고립된 시간의 즐거움
섬으로 떠나는 여행
물을 건너 도착한 외딴 섬에서 바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상상.
올여름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꿈꾼다는 고즈넉한 섬 여행을 계획해 보자.
글 문유선 여행작가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울릉도 해변
섬으로 떠나는 여행이 로망이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여행’은 일상의 공간에서 자의적으로 벗어나는 행위다. 섬은 ‘물(水)’ 너머에 있다. 일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심리적 만족도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 섬 여행이다.
섬 여행도 장르가 다양하다. 위치, 규모,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섬에 들어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도 미리 생각을 해봐야 한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리로 연결돼 사실상 육지나 다름없는 섬도 많다. 연륙교가 개통돼 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됐지만 오랜 세월 육지와 고립되어 있던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이 역시 섬 여행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바다 건너에만 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강 가운데 있는 것도 섬이고, 호수 중간에도 섬이 있다.
섬 여행은 육지와 다른 부분도 많아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다. 숙소가 없거나 예약이 어려운 곳도 많고, 끼니를 해결할 식당이 변변치 않은 곳도 부지기수다. 섬 내부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교통편도 각양각색이다. 육지에서 배로 물자를 실어오다 보니 물가가 높다는 것도 섬 지역의 특징이다.
배로 10분 이내, 바다 건너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섬이라도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거세지면 도항선 운행이 중지되는 곳이 많다. 태풍이 오는 계절이나 바람이 거센 겨울에는 섬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넉넉하게 일정을 잡아야 한다.

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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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물범
서해5도의 백미 보여준다 백령도와 대청도
옹진반도 주변에 위치한 다섯 개의 섬을 ‘서해5도’라 한다.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있다. ‘서해5도 지원 특별법’ 등 법령에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를 서해5도로 칭한다. 한편 연평도에 소연평도가 포함된 것으로 보고 강화군에 속한 무인도인 우도를 더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서해5도로 칭하기도 한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서해5도에 가는 배가 뜬다. 가장 큰 섬 백령도까지는 대략 4시간이 소요된다. 백령도에는 호텔과 모텔,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연평도와 대청도에도 펜션이 여러 곳 있다.
‘백령도는 먹고 남고, 대청도는 때고 남고, 소청도는 쓰고 남는다’는 말이 있다. 백령도에는 너른 들이 있어 쌀이 남아돌고, 대청도는 산이 높고 숲이 우거져 땔감이 많고, 소청도는 황금 어장 덕분에 돈을 쓰고 남는다는뜻이다.
백령도는 관광명소가 다양하다. 그중 해안을 따라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선 두무진은 섬을 대표하는 풍광이다.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형성된 기암으로, 바닷물 거품이 돌개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솟아올라 함박눈처럼 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곶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변과 더불어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정도로 모래가 단단해 6.25전쟁 당시 군사비행장으로 사용됐다. 아울러 콩 크기의 동글동글한 돌이 가득한 콩돌해안과 더불어 두무진과 사곶해변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대청도는 다른 섬에 비해 산이 높고 드넓은 해변을 품어 풍광이 빼어나다. 대표 명소는 ‘서풍을 막아주는 바위’를 일컫는 서풍받이다. 대청도가 생긴 10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섬으로 부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준 고마운 존재다. 1시간 30분쯤 걸리는 서풍받이 트레킹 코스에서 시작해 해발 343m 삼각산 정상에 오르면 대청도 구석구석, 소청도와 백령도는 물론 저 멀리 북녘땅까지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쌍봉낙타 조형물이 있는 옥죽동 해안사구와 지질 탐방 명소인 농여해변도 가볼 만 하다. 특히 농여해변의 또 다른 자랑은 국내 최대 규모 ‘풀등’이다. 풀등은 썰물로 물이 빠졌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섬 형태의 모래톱이다. -
기암절벽이 유명한 백령도
대청도의 사구
‘킹더랜드’에 등장한 걷기 좋은 섬 제주 가파도
제주에는 62개의 ‘섬 속의 섬’이 있고, 그중 유인도는 8개다. 제주도 부속섬 중 4번째로 큰 섬 가파도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를 헤엄쳐 가는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름은 가오리(가파리)를 닮아 가파도가 되었다는 설과, 덮개 모양을 닮아 ‘개도(蓋島)’로 부르던 것이 가파도라 굳어졌다는 설 등이 있다. 섬에는 93세대 177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포구 근처에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도 있지만, 오르막길이 없고, 1~2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어 도보로 둘러보는데 부담이 없다. 민박집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가파도는 최근 드라마 ‘킹더랜드’의 배경에 등장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전에는 최남단 섬 마라도에 밀려 관광지로는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섬이었던 가파도는 청보리 관광과 올레길이 조성되면서 하루에도 정기적으로 3~4회의 여객선이 왕복 운항하는 섬이 됐다.
올레길은 해안가를 따라서 가파도의 둘레를 걷거나, 중심을 가로질러 마을과 청보리밭을 보는 코스가 있다. 가파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보리다. 바닷일에 바빠 농사일에 신경 쓸 새가 없었던 주민들은 씨만 뿌려 놓으면 잘 자라는 보리농사를 짓게 됐다. 가파도의 보리는 재배 종으로 키가 1m를 훌쩍 넘는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 너울같은 보리 물결이 넘실댄다. 돌담과 바다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면서 지금은 유명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매년 4월 초~5월 초에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데, 청보리밭 걷기, 올레길 보물찾기, 야외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청보리 시즌이 아니라도 가파도는 충분히 아름답다. 여름에 해가 지면 한치잡이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모습이 장관이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푸른밤 너머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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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이 아름다운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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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해안가와 청보리밭 올레길
한려해상의 아름다움 만끽 통영 매물도
‘쿠크다스’ 과자 CF로 유명한 등대섬이 소매물도다. 본섬 격인 큰 섬은 그냥 매물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섬에는 90여 세대 200명 남짓한 주민이 살고 있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엔젤호를 타고 한산도와 비진도를 지나면 매물도 선착장에 닿는다.
원래 매물도에는 없는 것이 3가지가 있었다. 식당과 펜션, 그리고 자동차다. TV CF로 유명세를 얻은 소매물도에 관광객이 몰리며 펜션과 상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은 다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30만명이 넘는다. 거제나 통영을 통해 들어와 등대섬을 잠깐 보고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매물도 전체를 한 바퀴 도는 탐방로도 있다. 총 5km 남짓한 탐방로는 울창한 수풀과 푸르른 초지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탁 트인 바다 풍광과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당금마을과 대항마을 두 개 마을에서 탐방을 시작할 수 있는데 오후에 배를 타고 들어갔다면 대항마을을 추천한다. 다도해 섬 속으로 사라지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낙조 감상의 포인트는 ‘꼬돌개’다. 마을 사람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았다는 이곳에는 아름드리 해송이 늠름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꼬돌개’에는 아픈 사연도 있다. 200여년 전 처음 이 섬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섬 생활의 척박함과 괴질로 인해 모두 이곳에서 ‘꼬돌아졌다’(고꾸라졌다의 방언)는 슬픈 이야기다. ‘꼬돌개’ 뒷편에는 온통 다랑이 논밭이 펼쳐져 이주민들의 치열했던 삶을 보여준다.
낙조가 사그라진 뒤 민박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면 섬은 침묵에 빠진다. 바닷바람 소리와 머리 위 쏟아지는 별 무리를 감상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선착장으로 나선다. 물때에 맞춰 하루 두 번 열리는 등대섬과 본섬을 연결하는 ‘열목개’ 를 건너기 위해서다. 매물도에서 소매물도 까지 가려면 엔젤호 이외에는 낚시배를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바다의 택시’ 역할을 하는 낚시배의 요금은 딱 정해진 것은 없다. 배 주인과 이야기하기 나름이다.
등대섬 입구 선착장에 내려 등대섬을 먼저 오르고 동그란 돌이 깔린 ‘열목개’를 건넌다. 소매물도 본섬 가장 높은 곳 망태봉에 올라야 등대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망태봉 아래에는 ‘쿠크다스’ 촬영 때 쓰인 폐교가 있다.
선착장까지 내려가는 길에서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말을 건넨다. “얼마나 남았어요?” 준비 없이 찾아온 도시 사람들에게 망태봉 가는 길은 한없이 가파르게만 느껴진다. 편안한 운동화나 등산화가 필요한 길이다.
소매물도 선착장 부근에도 아담한 어촌 마을과 함께 펜션과 식당 같은 편의시설이 있다. 이곳에서 멍게비빔밥, 매운탕 등을 맛볼 수 있다. 매물도 주민들 중 여행 왔다가 눌러 앉은 이들도 제법 된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섬. 그곳이 바로 매물도다.

푸르른 초지가 펼쳐지는 소매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