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길 걷는 만추 여행지
화려한 단풍의 절정 끝에 오는 낙엽은 낭만과 사색을 부르는 대명사다.
번잡한 연말 시즌을 피해 조금 일찍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지로 낙엽길을 추천한다.
글 문유선
여행작가
“가까이 오라 /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 바람이 몸에 스민다 /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 가을이 왔다.
다가올 고난을 견뎌 내려면 가진 것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나무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로 나뭇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나무는 추운 겨울 강한 바람에 대한 손상을 최대한 막고자 이른 봄부터 잎과 가지를 잇는 잎자루에 ‘보호층’과 ‘떨켜층’을 만든다.
떨켜층은 잎이 나무에서 분리되는 부분으로 얇고 약한 세포벽이 좁을 띠를 이루고 있다. 떨켜층의 작용으로 엽록소가 파괴되면 나뭇잎은 노랗게 변하거나 붉게 물든다. 보호층은 잎이 지기 전 엽흔(잎의 흔적)을 만들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해 준다.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이 가을의 절정이라면, 낙엽은 그 끝을 장식하는 피날레와 같다. 낙엽길은 도시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일정기간 낙엽을 치우지 않는 구간을 정해 놓고 있다.
번잡한 연말 시즌을 피해 조금 일찍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조금 멀리에 있는 낙엽길을 찾아서 떠나 보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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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 은행나무 낙엽의 천국 남이섬
강원 춘천의 남이섬은 한류 열풍 이후 세계인이 사랑하는 여행지로 거듭난 명소다. 남이섬은 은행나무 낙엽을 쓸어내지 않는 것은 물론, 2006년부터 서울 송파구로부터 은행잎을 가져다가 은행나무길에 깔고 있다. 은행잎뿐만 아니다. 강을 끼고 있는 잔디밭 주위로는 느티나무며 상수리나무 등 활엽수 낙엽들이 발밑에 지천이다. 이른 아침 첫배를 타고 들어가면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낙엽길을 산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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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1974년부터 1995년까지 138헥타르에 자작나무 69만본을 조림해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그중 25헥타르를 유아 숲 체험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작나무 숲의 탐방은 입구에서 입산 기록 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입구인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서 시작되는 임도를 따라 걸어야 자작나무 숲에 닿을 수 있다. 임도는 두 가지 길인데, 도보로 80분가량 소요되는 원정임도와 1시간가량 걸리는 원대임도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수령이 20년 이상 되는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찬 숲이 펼쳐진다. 하얀 수피에 하늘을 향해 뻗은 자작나무 숲은 이국적인 풍취를 돋운다.
강원 횡성 낙엽 따라 31.5km 횡성호수길
호수와 함께하는 횡성의 풍광은 2000년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2000년 횡성댐 완공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생겨나고 그 둘레로는 횡성호수길이 만들어졌다.
횡성호수길은 호수와 주변 산을 테마로 총 31.5km, 6개 코스로 이뤄진다. 횡성호수길 6개 코스 중 으뜸은 5구간이다. 5구간은 횡성호를 가장 가까이서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유일하게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회귀 코스이기도 하다.
5구간이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은 ‘망향의 동산’이다. 망향의 동산은 횡성댐 건립으로 수몰된 갑천면 5개 마을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었으며 해마다 이곳에서 망향제가 열린다. 수몰 전 마을의 생활상과 여러 자료를 볼 수 있는 ‘화성의 옛터 전시관’도 운영한다. 전시관에 들러 횡성호가 품은 사연을 살펴보고 호수길 걷기 여행을 시작해도 좋겠다.
횡성호수길 곳곳에는 원시림이 가득한 오솔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호수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는 횡성호 쉼터 전망대와 은사시나무 군락지도 꼭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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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 하이원리조트 운탄고도 트레킹 코스
정선 하이원리조트(강원랜드) 주변에는 낙엽과 함께 가을의 끝자락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가 있다.
백운산 정상에 위치한 하늘길 운탄고도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해발 1,100m가 넘는 고지에 위치하면서도 평평하게 난 산길로,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의 능선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하늘길은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라 해서 ‘운탄고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늘길은 10여개의 코스를 갖추고 있다. 부담 없이 자신의 체력에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짧게는 15분짜리 산책코스에서 길게는 3시간 이상 걸린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출발한다면 마운틴콘도에서 하늘마중길·도롱이연못·낙엽송길을 거쳐 전망대와 하이원CC에 이르는 ‘3시간 코스(9.4㎞)’와 밸리콘도에서 출발해 무릉도원길, 백운산(마천봉), 산철쭉길, 마운틴탑(고산식물원), 도롱이연못을 거쳐 하늘마중길과 마운틴콘도에 이르는 ‘4시간 코스(10.4㎞)’가 인기다. -
강원 강릉 3,000여개 돌탑이 만든 노추산 모정탑길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노추산 자락을 걷다 보면 약 3,000개의 돌탑을 마주하게 된다. 한 여인의 정성과 집념이 만들어낸 길이다. 돌탑을 쌓은 차순옥 할머니는 결혼한 후 4남매를 두었으나 아들 둘을 잃고 남편은 정신 질환을 앓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40대 중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할머니는 꿈속에 나타난 산신령으로부터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강릉 시내에 살던 할머니는 1986년 ‘하늘 아래 첫동네’로 통하는 노추산 계곡에 자리를 잡고, 201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26년 동안 돌탑을 쌓았다. 이곳을 모정탑길 또는 노추산 모정탑길이라고도 한다. 주변으로 작은 계곡들이 있고 활엽수가 많아 단풍과 낙엽을 즐기기 좋은 길이다. 평지에 가까운 지형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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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물안개 그윽한 상림숲
상림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다. 신라진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으면서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상림숲 산책은 늦가을이 최고다. 쌓인 낙엽을 서걱대며 걷는 것도 좋고, 벤치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환하게 드는 가을볕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상림을 찾아가겠다면 되도록 이른 오전 시간을 권한다. 숲이 끼고 있는 위천의 물길에서 슬금슬금 올라온 물안개가 숲 속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볕의 형태를 보여준다. -
전북 고창 가을이 아름다운 절 선운사
전라북도 고창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선운사는 가을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절이다. 김제의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 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연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연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라 한다.
고창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즐비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2000년 고인돌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래 2003년 고창 판소리가 인류무형유산으로, 2013년에는 고창군 지역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2014년에는 고창 농악이 인류무형유산에, 2021년에는 고창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올해 5월에는 고창·부안 국가지질공원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6개 부문, 7개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