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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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정책의 새 틀 짜기
4가지 제언

정부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발표를 통해 주택정책의 방향전환을 예고했다.
주택정책의 새 틀 짜기에 필요한 몇 가지 제언을 보태고자 한다.


김준형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정부는 지난 8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방안은 그간 쉽게 꺼내지 못했던 파격적인 내용들을 주로 담고 있다. 주택가격 안정보다는 주거안정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을,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주택시장 ‘정상화’ 정책을 발표하는 식으로 기존 정책기조를 뒤집는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주택정책의 새 틀을 짜려는 모양새이지만 아직은 총론에 머물러 있으며 각론은 향후 연이은 발표로 구체화하겠다고 한다. 이에 주택정책의 새 틀 짜기에 필요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주택정책의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세우자

‘국민 주거안정 실현’이라는 목표는 구체화가 필요하다. 현재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 가구가 누구이며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가장 심각한 주거불안을 경험하는 가구들을 분명히 판별함으로써, 임기 내 주거불안 가구들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가 주택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70만호 공급은 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수단이 목표가 된다면 다시 공공주도의 하향식 공급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주택을 물리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거불안 가구가 주거안정의 상태로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이 목표를 중심으로 주택정책 전반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둘째주거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가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자

주택정책의 성공은 주거불안 가구의 주거안정에 있다. 주거불안의 실체와 원인, 가능한 대안들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거실태조사 등의 표본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빅데이터의 구축과 활용이 일반화되어 인구주택총조사도 행정자료에 기초한 등록센서스 방식으로 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발맞추어 주택정책 수립에 필요한 양질의 정보 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우선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 △열악한 품질의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가구원수에 비해 너무 좁은 면적에 거주하는 가구, △주거비부담이 너무 과도한 가구 등에 대한 실제 명부를 지방정부와 함께 작성하자. 이 명부는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주거급여, 월세 등의 지원, 전세자금이나 주택구입자금의 대출, 청약 및 분양의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
임대주택이나 분양주택이 공급될 때마다 국민들로 하여금 신청하게 만드는 방식이야말로 시급히 수정되어야 할 공급자 중심의 방식이다. 명부가 만들어진다면, 이 명부에서 심각한 주거불안을 경험하는 가구에 대해 최우선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가구들은 집단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주거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된다.
단순히 기준 소득을 초과한다고 해서, 무주택기간이 짧다고 해서, 부양가족이 적다고 해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All or Nothing’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개별 가구가 경험하는 주거불안이 주거지원 가능성에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일관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가 대기자명부를 구축하겠다는 소식은 이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공공임대에 한정하지 말고 지원대상 선정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대하길 바란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주택을 물리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거불안 가구가 주거안정의 상태로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데 있다.
이목표를 중심으로 주택정책 전반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셋째주거문제 해결의 주체들을 다양화하자

주거문제 해결의 주체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산하의 공기업으로 한정하고 민간기업에게 일반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바라는 시각도 우려스럽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분법으로는 주거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없다. 정녕 주거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면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도 주거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 지원의 핵심은 시장가격대의 주택을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입주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과 실제 공급가격과의 차액이 지급된다면 개념적으로는 어떤 주체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차액을 지역이나 입주가구에 따라 규정해서 민간기업이나 사회주택 사업자 등 비정부부문에서 얼마든지 주거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현재의 공기업 주도 방식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좋은 입지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이익을 활용하자

새 정부는 특별히 입지를 강조한다. 외곽의 신규 개발보다 도심의 기존 개발지 정비를 통해 공급물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외곽 개발에 비해 도심 정비가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되므로, 정해진 임기 내에 충분한 주거기회를 도심에서 제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모순을 극복할 대안은 개발이익에서 찾을 수 있다. 용적률 등의 규제완화를 통해 개발이익을 크게 늘리고, 개발이익의 일부를 중저소득층의 주거기회를 제공하는데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정비사업의 대상지가 기존에는 대부분 주거취약계층의 부담가능한 주거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이 접근은 충분한 정당성을 갖는다.
재건축부담금도 마냥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재설계되어야 한다. 개발이익이 많이 발생하는 도심의 정비사업에는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충분한 주거기회를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이 책임은 그 어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택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함께 늘어나는 재산세, 양도소득세, 종부세 등의 세수가 해당지역의 주거기회 마련으로 이어지도록 강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조가 마련될 때 양질의 입지에서 부담가능한 주거기회가 충분히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