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든든한 길잡이
등대로 떠나는 여행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등대 여행을 추천한다.
자녀들과 등대스탬프투어를 즐길 수 있으며 등대 내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글 문유선
여행작가

충북 태안 안흥항에서 12㎞ 떨어진 옹도와 옹도등대. 옹도는 그 모양이 옹기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족은 등대와 같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부모는 자녀를 기준점 삼아 하루하루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간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길을 잃지 않게해주는 가장 든든한 길잡이는 가족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어딘가 떠나고 싶다면 등대 여행은 어떨까. 등대는 항구 방파제의 입구 쪽 끝에 많다. 선원들은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마치 동네 어귀에 마중 나온 가족과 비슷한 존재다.
현대에는 GPS가 등장했지만, 등대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GPS는 길을 찾아 주지만, 등대는 ‘여기에 나 있음’ 하고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경고용으로 등대만한 게 없다.
등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상시 돌아가는 시설로서의 등대는 적어도 고대 이집트 시절에는 이미 체계화되어 있었으며,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의 등대가 있었다. 이 등대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무려 160m나 되는 높이에 거대한 거울로 불빛을 반사시켜서 거의 40km 밖에서도 불빛이 보였다고 전해지나 15세기 경에 지진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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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세워진 간절곶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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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구항의 하멜등대
2세기에 로마 제국이 파로스의 등대를 모방해서 스페인에 등대를 세웠는데, ‘헤라클레스의 탑’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등대는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잘 작동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등대는 삼국유사에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들어올 때 수로왕이 신하 유천간에게 명해 망산도 위에서 기다리다 횃불을 올려 허황옥의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했다는 기록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도경에도 중국 사신의 배가 밤에 다다르면 봉화불을 밝히는 등대 시스템이 존재했음이 기록돼있다.
1903년 6월 1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등대, 소월미도등대와 북장자서등표, 백암등표가 처음 불을 밝혔고 그 다음해 1904년 4월 부도등대가 세워졌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3,332개의 등대가 있다. 유인등대는 38기이며, 순회 점검하는 무인등대와 바다에 떠 있는 등부표, 음파표지까지 합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항로표지 시설은 5,000여 개에 이른다.
해양수산부 ‘등대와 바다’ 홈페이지에서는 등대스탬프투어를 즐길 수 있는 등대여권을 발급한다. 종이여권의 경우에는 ‘등대와 바다’ 홈페이지를 통해 본인 확인을 거친 후에 신청할 수 있다. 발급료는 무료, 배송비 4,500원만 내면 발급된다. 모바일여권은 구글스토어나 앱스토어를 통해 ‘스탬프 투어’ 앱을 내려받은 뒤, 앱 내에서 ‘등대 스탬프’ 투어를 검색해 참여하면 된다. GPS 기반으로 한 디지털 여권으로 현장에서 손쉽게 사진을 업로드하고 등대 인증을 할 수 있는 편리함이 강점이다.
가덕도, 거문도, 간절곶 등대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에 각 지방해양수산청 예약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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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에 자리한 국립등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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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호미곶등대
한반도 본토 최동단 호미곶은 군사적 요충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었고, 러일전쟁이 일본의 압승으로 끝난 후인 1907년에는 일본 해군이 호미곶 인근 야산에 망루를 설치해 운영했다.
1907년 9월 9일 호미곶 앞바다에서 일본 도쿄수산강습소(도쿄수산대 전신)의 실습선 가이요마루가 암초에 부딪혀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사망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 이 사건의 책임을 물었다. 우리의 항만시설이 부실해 사고가 났다는 억지 주장을 하며 대한제국의 비용으로 등대를 건설하라고 요구했다. 무기력한 대한제국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추진된 것이 호미곶등대다. 등대는 1908년 4월 13일 착공하여 그해 11월 19일 준공했으며, 12월 20일 점등했다. 대한제국의 오얏꽃 문장이 6층으로 된 호미곶등대의 등대탑 내부 각 천장에 조각돼 있다.
일본이 강요한 이 등대는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을 맡았다. 벽돌로 26.4m를 쌓아 올린 백색의 팔각형 등대는 일몰에 불빛을 켜고 일출에 불빛을 끈다. 12초에 한 번씩 먼바다를 향해 빛을 뿌리는데, 빛의 도달 거리가 16해리(약 40㎞)에 이른다. 이 등대는 세계등대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호미곶등대는 새해 첫 해맞이 명소로도 이름 높다. 인근에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프랑스인이 설계한 포항 호미곶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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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가장 오래된 인천 팔미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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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팔미도등대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15.7㎞ 떨어진 작은 섬 팔미도는 인천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팔미도등대는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로, 섬 정상에 높이 7.9m, 지름 2m 규모로 세워져 120년 전인 1903년 6월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특히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때에는 연합군 함대가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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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죽변등대
1910년 11월 24일 처음으로 불을 밝힌 이래 죽변항과 동해상을 항해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한 죽변등대는 대한제국 시절 착공되었기 때문에 등탑 내부 1층 천정에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세워져 풍광이 아름답고,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2005년 9월 경상북도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
1910년 처음 불을 밝힌 죽변등대
충남 태안 옹도등대
안흥항에서 12km 지점에 있는 옹도는 1907년 옹도 등대가 세워지고 100여 년간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섬이다. 주민은 없고 등대지기와 낯을 무척 가리는 강아지 한 마리만 이곳을 지킨다.
등대 불빛은 35~40km 거리에서도 육안 식별이 가능하며 주로 대산, 평택, 인천항을 입출항하는 선박들이 서해안 항로를 따라 이곳을 거쳐 지나간다. 옹도등대는 2007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16경에 포함되었고, 지난 2013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안흥항에서 약 12km 떨어져 배를 타고 약 30분가량 걸리는 옹도는 그 모양이 마치 옹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옹도에 가는 방법은 안흥항에서 여객선을 타는 것이다. 경력이 풍부한 선장님이 구수한 입담으로 주변 지형을 설명해준다. 안흥항 주변 해협은 진도 명량해협의 울돌목, 강화도 손돌목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가장 센 곳이다. 배에 올라 수면을 관찰하면 물살의 흐름이 확연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난파선이 하도 많이 나와서 원래이름이 난행량(難行梁)이었다가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안흥량(安興梁)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섬에 상륙해 동백 군락지를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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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옹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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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도등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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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이호테우등대는 조랑말 모양으로 인기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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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등대들
부산에는 특이한 등대가 많다. 젖병등대는 전국에서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시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었다. 기장군 서암방파제에 있으며, 해안을 따라 태권V등대, 월드컵등대 등 여러 등대가 줄지어 서 있다.
제주는 말의 고장. 이호테우등대는 그 명성에 걸맞게 빨간색과 흰색의 쌍둥이 조랑말 모양을 한 12m 높이의 등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