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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떠나요
원도심
걷기 여행
올레길에서 비롯한 걷기 열풍이 레트로 감성이 물씬한 원도심으로 이동했다.MZ 세대 여행자들을 중심으로 걷기 여행지로 거듭난 원도심들을 소개한다.
- 글 문유선 여행작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3월 날씨다. 완연한 봄 정취를 느끼려면 벚꽃이 피는 4월은 되어야 한다.
풍경이 애매한 계절에는 도시로 떠나보자. 옛 정취를 따라가는 원도심 여행은 계절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도심(原都心), 또는 구도심(舊都心)은 처음 도시가 형성되던 시절의 중심지를 말한다.
사람은 길이 있어야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도시가 된다. 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치며 근대 이전 발달한 오래된 도시는 강이나 포구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는 육로보다는 수운이 발달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한다. 군사적 요충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주둔시키다 보니 도시가 되어버린 곳도 있다. 이러한 옛 도시의 중심에는 권력이 있다. 궁궐이나 관아 같은 핵심 시설 주변을 따라 도시의 기능이 발달했다.
철도가 놓인 근대 이후, 도시는 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갔다. 기차가 서는 곳에 돈과 사람이 몰렸다. 초창기 철도는 원도심의 핵심 지역과 가까웠다. 고속철 이전의 경부선과 호남선 등의 큰 역은 원도심의 한복판이다.
70년대 전후로 우리나라에는 신도시라는 개념이 생겼다. 밀집도가 높고 땅값이 비싼 원도심의 외곽지역에 쾌적한 계획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신도시에도 철도가 깔렸고, 90년대 이후 마이카시대가 오며 사람과 돈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쾌적한 신도심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점차 원도심에 집중되어 있던 도시의 기능이 파편처럼 주변으로 흩어졌다. 부동산 투자 광풍은 원도심의 쇠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불씨가 꺼져가던 원도심을 살린 것은 외지 사람들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원도심에 감각적인 젊은 상인들이 가게를 차리기 시작했고, MZ 세대 여행자들이 레트로 열풍을 이끌며 원도심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방치돼 있던 건물이 카페, 갤러리, 대안 공간 등으로 되살아났다.
원도심 여행지를 찾기 어렵다면 내비게이션에 ‘중구’를 입력하면 된다. ‘중구’라는 행정구역은 수많은 도시에서 발견되는데, 도시의 중심을 뜻한다.
성심당에서 성심당으로 이어지는 대전 원도심
대전역 맞은편 길이 중앙로다. 이 길 주변 대흥동·선화동·은행동·중앙동 일대가 과거 충남도청이 있던 옛 대전시의 원도심이다.
이 지역은 유성과 대덕, 둔산동 일대에 신도시가 세력을 키운 이후 대전의 중심에서 한참 동안 소외돼 있었다. 대전역과 마주보고 있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은 과거 충청남도청이 있던 건물이다. 다양한 전시 시설이 있어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한말 이후 충청남도청 소재지는 공주였는데, 치열한 공방 속에 1932년 대전으로 이전했다. 현재 충남도청은 홍성에 있다.
대전역 뒤편으로 요즘 가장 핫한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있다. 1927년 일본인 거주지의 홍수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소제호를 매립하고 철도관사촌을 지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대부분 소실됐지만,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카페가 되고 갤러리로 변신했다. 역에서 가까운 이곳은 KTX를 통해 다른 도시를 여행하다 ‘환승 투어’ 기분으로 잠시 짬을 내서 들러볼 수 있다.
대전 여행은 ‘성심당에서 시작해 성심당에서 끝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은행동 성심당 본점은 구도심 투어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작은 찐빵집으로 부터 시작한 성심당은 1980년 튀김소보로라는 대박 상품을 개발한 이후 전국구 반열에 올라섰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여행자는 대전역에서 다시 성심당 간판을 보게 된다. 너도나도 튀김소보로 선물세트가 손에 들려 있다.


원도심 투어의 성지 군산 건축기행
군산의 원도심 근대문화유산거리는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의 대부분이 보존돼있는 덕에 군산시는 탁류의 배경지를 탐방하는 걷기 코스 ‘탁류길’을 조성했고, 대부분의 여행자가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1899년 강제 개항한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933년 우리나라 총 쌀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돈이 풀리기 시작하자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이 군산으로 모여들었고,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그마한 어촌마을에는 갑자기 2~3층의 일본식 건물들이 들어섰고 일본은행과 요정, 청요릿집, 인력거꾼이 넘쳐났다.
탁류길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된다. 해망로 일대는 2011년 군산 근대문화관이 개관하면서부터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인기 공간은 1930년대 군산에 있던 건물을 복원한 근대생활관이다. 군산역, 영명학교, 야마구치 술 도매상, 형제 고무신방, 홍풍행 잡화점 등 당시 군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놨다.
옛 조선은행도 가볼만하다. 조선은행은 근대건축관으로,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근대미술관으로 각각 재탄생해 여행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장미동 곡물창고는 현재 장미갤러리로 바뀌어 예술작품을 전시 중이다.
옛 군산세관 건물은 서울역사, 한국은행과 더불어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불린다. 이곳은 지금 인문학 카페로 운영 중이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동국사, 고우당 등까지 탁류길의 주요 지점을 돌아보는 코스는 약 6㎞에 달한다.


골목마다 피어나는 이야기꽃 대구 원도심
대구의 도시 풍경은 근대사를 거쳐오며 대부분 완성됐다. 원도심의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마다 이야기가 넘쳐 흐른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총 5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1코스는 ‘경강감영달성길’, 2코스 ‘근대문화골목’, 3코스 ‘패션한방길’,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5코스 ‘남산 100년향수길’이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2코스 일부 구간을 둘러 보지만 대구의 속살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5코스와 2코스를 아우르는 일정도 좋다.
5코스 마지막 지점은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위치한 남산동이다. 살르트성바오로 수녀원과 성모당, 성유스티노 신학교가 몰려있는 야트막한 언덕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아름드리 나무도 있고 딱따구리 같은 새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교구 내부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묘지는 필수 방문 코스다. 1898년 한국에 건너와 왕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린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신부를 비롯해 한국 천주교를 이끌어 왔던 성직자들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묘지에서 조금 더 걸어 나오면 성모당이 나온다. 거대한 야외 성당같은 곳인데 쉽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수녀원과 신학교는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외관을 구경하는 것에서 만족해야 한다.
대구의 ‘힙스터’는 북성로에서 논다. 북성로는 대구역사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길이 1.42㎞의 도로를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고, 광복 이후에는 일본상인이 빠져나간 자리에 기계, 철물, 금속을 취급하는 상점이 속속 들어서서 사교와 문화의 거리로 이름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구도심의 정취를 담은 카페와 레스토랑, 전시장, 대안공간 등이 등장해 젊은이들이 주목하는 거리가 됐다. 대체로 서울의 을지로 일대와 비슷한 분위기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난 내려온 예술가들은 다방과 음악 감상실에 모여 예술을 꽃 피웠다. 원로 음악가들이 자주 찾았던 ‘백조다방’, 구상 시인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꽃자리다방’, 이중섭 화가가 담배 은박지에 소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 등을 비롯해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 ‘녹향’이 아직도 북성로 골목에 모습이 남아있다. ‘꽃자리다방’ 루프탑 공간은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위한 필수 코스다.
이 외에도 구상 시인과 동화작가 마해송 같은 문인이 자주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화월여관’, 이중섭 화가가 숙소로 사용했던 ‘경복여관’도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사용되었던 일본식 건물을 개조한 ‘북성로 공구박물관’도 가볼만하다.



올라가면 청라언덕 방향으로 연결된다.

북성로 카페 ‘북성로 사람들’의 인기메뉴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구 중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