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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서‘신뢰짓는 건설인’으로 인생2막
나눔실천하고 청빈하게 돌아가고파

- 글 구선영 사진 왕규태
낮엔 공사현장, 밤엔 설계공부 … 농부출신 건설인
“저는 전남 함평의 촌마을에 살던 농부였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가 서른이 되어서야 도시에 나왔지요.”
동건종합건설(주) 이흥재(73) 회장은 1950년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할아버지를 잃고, 연이어 보도연맹사건으로 아버지마저 잃었다. 그의 나이 한 살 때였으니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6살에는 어머니와 헤어지는 아픔까지 겪었다. 이후 할머니와 작은아버지 댁에 살며 서른살 무렵까지 소작농으로 연명했다.
“건축업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농사를 짓다가 UR(우르과이라운드)가 체결되면서 농사로는 자식 교육을 못 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전에서 집 짓는 친구의 권유로 대전으로 오게 됐습니다. 낮에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설계도면을 보고 공부했죠. 모르는 것은 다음날 설계사무소에 찾아가서 가르쳐달라 했고요. 이렇게 시작해서 술, 담배 안하고 골프도 안치며 열심히 일해서 여기까지 성장했으니 감사할 따름이고 더는 욕심이 없습니다.”

소시민 집 걱정 덜어주고 싶어서 임대아파트 지어
이흥재 회장이 건설인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무대는 대전이다.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밝힌 그는 “진심이 통하는 곳이었기에 사업도 할 수 있었다”며, “대전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IMF 여파로 자금이 묶였던 시절, 이 회장은 집이 팔릴 때마다 100만원, 200만원씩 소액이라도 공사대금을 갚아가며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그의 진심을 믿고 기다려준 협력업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동건종합건설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1990년대에는 빌라와 연립주택을 주로 짓다가 2000년대 들어 임대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어요. 광역시 중에서 대전의 주택보급률이 가장 낮은 것을 보고 어려운 사람들이 집 걱정 않고 살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임대아파트도 살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철근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지요. 그 덕분에 대전에서 쌓은 신뢰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2002년 이 회장은 ‘참좋은’ 브랜드를 론칭해 대전시 변동, 대흥동, 선화동, 판암동, 인동, 부사동 등지에 7개 단지 2,000여 세대를 임대·분양했으며 현재 1,500세대의 임대주택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에도 진출했다. 올해 10월말 서울 중랑구 양원 공공주택지구에 ‘힐데스하임참좋은’ 아파트 218세대가 입주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천검단에서 높은 경쟁을 뚫고 택지를 공급받아 2년 후 아파트 1,160세대를 짓는다.
“임대아파트는 계속해서 지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보다 편하게 집을 얻고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려면 부담없는 가격의 양질의 아파트가 필요하니까요.” 이 회장은 대전 시내에 입지 좋은 터들을 확보해 두었다고 귀띔한다.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을 위해 임대아파트도 쓰리룸을 주로 짓는다”는 그의 말에 진심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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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재 회장은 2012년 모교인 손불초등학교에 귀흥장학재단을 설립하고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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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함평군에 출산장려금 1억원을 기부했다.
불우한 어린시절 딛고 성공한 이 회장, ‘장학사업’부터
“임대아파트사업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 대신 열심히 절약한 돈으로 사회공헌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부단히 아끼며 살았지요.”
이 회장은 주택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여력이 생기자 장학재단부터 설립했다. 2012년 선친의 모교이자 그의 모교이기도 한 전남 함평군 선불초등학교에 3억원을 쾌척해 만든 귀흥장학재단이 그것이다. 장학재단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이 회장의 마음과 교육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선친의 뜻을 담은 숙원사업이었다.
이후에도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지속해왔다. 올해는 함평군청에 출산장려금 1억원을 기부하며 인구절벽에 처한 고향에 도움을 주고자 나섰다. 6월에는 함평군 아너소사이어티 1호로 등록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대전지역에서의 기부도 오랫동안 이어왔다. 매년 대전의 동구, 중구, 서구청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난방비도 지원하며, 영유아용품지원에도 매달 나선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각 구청에 마스크도 기부했다.
대전시티즌도 후원하고 있다. 대전을 빛내기 위해서는 대전의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장섰다. 이 회장은 도시재생주택 분야의 전문가다운 면모를 인정 받아 대전시 명예시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이미 2005년 충남대 경영자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한 바 있다.
스스로를 ‘작은 사람’이라고 낮추는 이 회장은 알고 보면 뜻이 ‘큰 사람’이다. “10년 앞을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위해서는 사람을 키우라는 말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왔다”는 그는, “남은 생은 사회에 봉사하고 청빈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사회적 소임을 다하고 싶다” 는 뜻을 내비췄다.
사실 지난 15년간 동건종합건설의 공식적인 기부금액만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행한 선행과 기부는 빼고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유공자 노후주택보수사업에 13년간 참여해 매년 1,000만원이 넘는 공사를 완료하는 등 꾸준하게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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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청 사랑의 성금 기탁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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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기초수급자에게 매년 난방비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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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대전지역에서 꾸준한 기부활동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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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노후주택보수사업에 13년간 꾸준히 참여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귀거래사, 사회에 부 나누며 다시 농부의 삶으로
이 회장은 고향에 전통한옥을 짓고 함평과 대전을 오가는 ‘5촌(村)2도(道)’의 삶을 살고 있다. 고향친구들과 어울려 짓기 시작한 농사에 재미를 붙여 어느덧 40마지기 벼농사를 짓는 중농이 되었다.
“환갑이 지나고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나를 위해 살고 싶다며 가족들에게 두 가지 양해를 구했지요.”
이 회장은 제일 먼저 고향 함평에 집을 짓고 6살까지 키워주신 어머니를 7년만 모시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5년 반을 아들과 함께 살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두번째로 이 회장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회장의 두 아들이자 동건종합건설을 경영하고 있는 이계혁 사장과 이건우 부장은 “아버지가 버신 돈은 모두 쓰시라”며 흔쾌히 응원했다.
어려움 속에 성장한 이 회장은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를 살게 해줬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음을 비우니 회사가 더 잘 되더라는 그는, “경영을 책임진 자녀들과 성실하게 일해온 50여명의 직원들이 앞으로도 좋은 집을 짓는데 힘을 쏟고 윤리적인 면에서도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과 당부를 남겼다.

